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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N뉴스 2016-11-29 19:53:13본문

실추된 국격에 분노…아빠도 아이 목마 태우고 나왔다
주말인 지난 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및 박근혜 대통령 규탄 촛불집회에는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최대 인파가 몰렸다. 교복부대, 대학생은 물론 유모차를 끌거나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종교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계층이 촛불을 들었다. 전날 박 대통령이 2차 사과 담화문을 발표했지만 참가 인원은 지난달 29일 1차 집회 때보다 주최 측 기준으론 10배(20만명), 경찰 추산으로도 4배(4만5000명) 급증했다.
오는 12일 예정된 민중총궐기 집회에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운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8년 6월에는 주최 측 추산 70만명(경찰 추산 8만명)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운집해 이명박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오는 12일 집회에는 주최 측인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최대 100만명으로 목표치를 대폭 상향 조정했다. 민주노총 등도 대거 참가할 예정이어서 일부 폭력사태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5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최순실 사태 관련 촛불집회에는 광우병 사태·세월호 집회 때와 달리 아들을 목말 태운 아버지, 어린 학생 등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유난히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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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1항이 그렇게 공허한 문장이었나요. 우린 대통령에게 그 의미를 알고 있나 묻기 위해 나온 겁니다."
서울광장 앞에서부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약 2㎞의 구간. 대한민국을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민심이 암흑처럼 어두워졌지만 이곳엔 수십만 개 촛불이 모여 밤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시위 양상도 과거 광우병 사태·세월호 집회 때와는 전혀 달랐다. 국민은 자신들의 발언권을 특정 시민단체에 맡기지 않았다. 준비해온 서툴지만 솔직한 심정을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읽어내렸고 집회 때마다 늘 시도했던 청와대 진입과 폭력 충돌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신속한 현장 중계 등으로 막아냈다.
이날 오후 2시부터는 2만여 명이 참가한 백남기 농민 영결식이 열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집회 참가자들이 모여든 것은 범국민 대상 집회가 시작된 오후 4시부터였다. 대다수 시민들은 영결식보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정부 진상 규명과 박 대통령 퇴진 요구에 집중했다. 2008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조직돼 시위를 이끌어간 광우병 집회 때와도 다른 모습이다. 역시 '4·16연대'라는 조직적 차원에서 시위 주도가 이뤄진 세월호 집회 때와도 대비된다. 촛불집회에는 수백 개 단체가 참여했다.
본지 취재진이 광화문 일대를 돌아다니며 확인한 단체만 150개에 달했다. 9세 아이와 함께 나왔다는 주부 강정아 씨(40)는 "아이가 나중에 커서 역사를 배울 때 2016년을 돌아보며 그때 우리도 거리에 있었다는 사실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도록 교육 차원에서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산다는 한종만 씨(64)는 "집회 참여가 육십 평생 처음"이라며 "대한민국의 권력이 '1+1'(박근혜 대통령+최순실 씨)이 아니라 '1(대통령)+모든 국민'이라는 점을 깨우쳐주려 나왔다"고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 때는 은행협동조합 등 직장인으로 구성된 `넥타이 부대`가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진 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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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는 메시지는 무거웠으나 그 표현 방법이 유쾌했다는 점도 다른 집회 때와 달랐다. 시위보다는 프로야구 경기장이나 대형 콘서트 시작 직전의 흥겨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모습과 20·30대 젊은 연인들도 다수 보이는 등 소풍 나온 분위기도 엿보였다. 한 힙합 가수의 즉석공연이 벌어지며 시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탈리아인 여행객 안토니오 도나도니 씨(34)는 "진지할 수도 있는 분위기를 축제같이 진행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공식적인 주도 단체 또는 특정 리더 없이 20만명의 시민들이 뭉쳤던 2014년 10월 홍콩 우산혁명과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홍콩 우산혁명은 중국 본토의 선거 개입과 과도한 내정 간섭에 반발해 고등학생인 조슈아 웡이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우산으로 경찰의 살수차와 최류탄을 비폭력적으로 막아낸 '도심 시위'다.
실제 이날 집회에는 중·고등학생도 상당수 참여했다. 광화문광장 맞은편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중·고등학생 40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중고생연대 시국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방에서 온 중학생 박 모군은 "2년 전 홍콩에서 중국으로부터 선거자치권을 주장하며 비폭력 저항 시위를 주도했던 인물도 15살 때 시민단체를 만들었던 학생 '조슈아 웡'이었다"며 "우리가 분노한 것은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권리를 전혀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 추산 최대 20만명의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큰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얼굴과 눈을 가리고 새총을 쏘는 전문시위꾼도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이 한때 예정된 경로를 벗어나 명동 쪽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경찰이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충돌을 피했다. 경찰 병력이 횡단보도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에 나서면 시민들은 차분히 지시에 따르는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전경과 말다툼이 벌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하지마, 하지마" 구호를 외쳐 거친 현장 분위기를 자제시켰다
김영미기자













